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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농협 경제형농기계, 進化인가 또다른 족쇄인가

농협 마크 달고 OEM 체제로 공급한다
국제와 동양, 첫 경제형농기계 사업참여
이세키 승용이앙기 150대공급…업계충격


지난 7일 농협 자재부의 농기계사업 승용이앙기 입찰에서 국제종합기계(250대)와 동양물산기업(150대)이 선정돼 내년 총 400대의 6조 티어4 디젤형 승용이앙기를 납품하게 될 전망이다. 


이번 농기계 입찰은 기존 농협의 농기계 계통구매사업과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존재한다. 우선 농협이 경제형농기계라는 새로운 사업명을 들고 나왔다. 기존 농기계은행사업용 트랙터공급입찰이 제조업체로부터 농기계를 구매하는 것이라면, 이번 농협 경제형농기계로 선정된 농기계는 농업 마크를 달고 납품될 전망이다. 일종의 OEM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업체 선정 방식에서도 1차는 가격심사(70점)이지만 2차는 농협 농기계사업 관련 농기계기사들이 포함된 심사단 대상 업체 프리젠테이션 결과(30점)도 배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번 첫 승용이앙기 주문 입찰을 시작으로 OEM 체제의 경제형농기계 사업이 정착될 전망이다. 내년 실시 예정인 트랙터 입찰도 경제형농기계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농협 자재부는 지난 3일 국내 4개 종합형업체 대상 경제형농기계 설명회에서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주문형 트랙터 사업을 예로 들었다.


일본 전농은 올해 농기계사업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얀마로부터 1500대 물량의 농기계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농의 이번 농기계사업은 주요기능 위주로 구성해 가격을 낮춘 농기계를 주문 공급해 농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전략이다. 농자재 계통구매사업은 농협중앙회가 ‘원조’이지만 이번 경제형농기계 컨셉은 농협이 전농의 OEM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번 경제형농기계 사업 추진과 입찰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4개 종합형농기계 생산업체는 농협의 취지는 전달받았지만, 입찰 전 검토기간은 매우 짧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의 종합형 농기계 대리점들은 이번 승용이앙기 입찰 건에 대해 태반은 모르고 있는 상황으로 읽혀진다.


이번 농협의 첫 경제형농기계 입찰 결과의 특이점은 동양물산기업이 배정받을 전망인 150대 물량이 일본 이세키 제품이라는 점이다.


일본 브랜드 주요기종의 낙찰에 대해 업계에는 충격의 물결이 퍼져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농기계 유통업계는 내년 농기계 시장에 대한 시름의 주름살이 더 깊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생산업체 전반의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승용이앙기 시장은 물량감소, 외국산 농기계 점유 증가 등 국내 농기계산업이 처한 현실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국내에서 판매된 승용이앙기는 정부 융자지원판매액 기준 총 3341대로 나타났다. 이중 국내산은 1763대이며 수입산은 1578대, 53:47의 비중으로 외국산 농기계가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양상이다. 국내 시장도 축소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수에서 9.9% 감소했으며 금액은 14.2%가 대폭 감소했다.


2016년 915억원, 2017년 784억원으로 축소된 국내 승용이앙기 시장은 올해 더 저조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월말까지의 판매대수는 3013대, 금액은 697억에 그쳐 전년 동기대비 수량 -8.5%, 금액 -9.8%를 기록하고 있다.
악화일로의 시장에 농협의 경제형농기계 사업이 미칠 악영향에 대해 업계는 대책 마련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공통적으로 나온 개탄의 소리는 “이런 여건에서는 국내 농기계 주요업체들이 R&D에 힘을 쏟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정체 상태의 국내 농기계시장에서 저가를 표방한 농협 농기계사업은 농기계기업의 기술개발과 신기술 신기능을 탑재한 농기계 개발 계획을 백지로 돌리게 할 만한 파급력이 있다.
겨우 400대의 물량. 그러나 4000대도 되지 않는 국내 승용이앙기 시장을 돌아보면 적은 물량이 아니라는 관련 전문가의 진단이다.


“일본 농기계 글로벌 업체의 경우 이미 수출 위주로 자리잡았고 내수시장의 비중은 당연히 크지 않습니다. 일부 저가형 농기계가 전농을 통해 공급돼도 시장이 완충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요. 그렇지만 국내 농기계 업체 내수시장은 일본과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요. 국산 승용이앙기 시장이 초토화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더 큰 위험요소는 농협 경제형농기계 보급이 승용이앙기뿐 아니라 트랙터 등의 주요기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존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용 트랙터 계통구매사업이 재고증가와 판매감소 등으로 골치를 앓아온지 오래다. 농협은 이번 OEM 방식의 경제형농기계 보급으로 농협 농자재 사업의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농협 농기계사업 관계자는 이번 경제형농기계에 대해 “농협이 주문해 전과정을 책임지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농협 농기계로 주문해 공급하는 만큼 업체가 운반비나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농기계 검정의무가 없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모든 농기계가 검정을 받아야 하므로 업체가 주문받아 새로 제작해 납품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경제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산 농기계의 농협 진입에 대해서도 기존 농협 농기계계통사업에서 외국산 주요기종 공급이 있어 왔다며 업계 전반의 반응과 다른 온도차를 보였다. 내년 2월말 예정인 트랙터 입찰·공급도 경제형농기계 방식으로 진행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검토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관련업계는 이에 대한 대응책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쌀값 인상에도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은 농기계 내수경기에 고민이 깊은 업계는 농협의 ‘저가 입찰’에 이은 ‘저가 주문’이 산업 전체에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긴장하고 있다.


“우리 농기계 시장에서 국내산이 소외되고 외국산들의 각축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25년 간 농기계유통에 종사해 온 한 농기계대리점 대표의 한숨어린 개탄이다. “현재 외국산 농기계의 비중이 약 30%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내업체를 통해 판매되는 외국 브랜드 농기계까지 포함했을 때 그 비중은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여요. 국산 농기계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은원 기자 | wons@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