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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시장 좀먹는 불법 수입 중고농기계

법망 뚫고 불법유통, 배기가스 검증 안받아
농민 면세유·A/S 못받고 대리점 매출 피해
부과과징금 낮고 정부 합동 점검반 ‘무용지물’

 

전북 지역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수입 중고 농기계를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판매업체를 수소문 해 신제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입 중고 트랙터를 구입했다.


A씨는 구매한 중고 농기계가 불법적으로 수입돼 판매된 것이라는 사실 조차 몰랐다. 트랙터에 고장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해당 브랜드 업체에 문의한 후 정식 통관절차와 검사를 거친 농기계가 아니어서 A/S가 안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또 다른 전북 지역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B씨의 경우도 중고 농기계를 시중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말에 덥석 콤바인을 구입했다. 하지만 고장이 났을 때 부품을 구하기 힘들었고 불법으로 들여온 수입 중고 농기계라는 이유로 면세유 지원 등 정부 혜택을 받지 못해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었다.


수입 중고농기계 야금야금 판매 늘어
이처럼 최근 수입 중고 농기계가 불법적으로 들어와 판매 유통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북과 전남, 충남 등 논 면적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트랙터와 콤바인 등이 암암리에 불법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위에서 본 사례처럼 불법 중고 수입농기계 유통은 곧바로 농가 피해와 직결된다. 여기에 농기계 유통시장 교란과 혼탁 등 관련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농가들이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저렴한 가격에 혹해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법 자행하는 중고 농기계 수입판매

수입 중고 농기계 판매에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환경부 대기환경보전법 배기가스 배출허용기준이 바뀜에 따라 Tier-4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엔진을 장착한 농기계만이 국내 유통 및 판매가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에 2017년 이전에 국내에서 제조, 판매가 됐거나 수입된 농기계가 아니면 Tier-2, Tier-3기준의 디젤엔진을 장착한 농기계는 수입 판매 자체가 불법이다.


여기에 개별로 수입되는 중고제품 및 신제품 모두 환경기준에 대한 개별인증을 받아야 한다. 위반 시 수입업자에게 과징금이 부과되고 수입된 농기계는 유통이 금지된다. 


또 농업기계화촉진법 제9조 2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농업용 트랙터, 콤바인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농업기계에 대해 검정을 받지 아니하고 판매 유통을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위반 시 등록 취소 및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융자 취급도 불법으로 간주된다.

 

 

법망 피해 전국적으로 불법 유통업자 증가
그러나 이런 규정이 있어도 불법 유통업자들은 교묘히 법망을 피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모양새다. 관련 업계에서 파악된 업체만 해도 줄잡아 십여 곳에 이르지만 실상은 전국적으로 그 수가 상당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들 농기계 기종은 주로 트랙터와 콤바인이며 트랙터는 존디어, 클라스 등 글로벌기업 브랜드다. 콤바인은 얀마나 구보다 제품이 일본, 대만, 동남아 등지의 오리지널 혹은 현지 로컬제품이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판매 방법은 직접 홍보는 하지 않고 지역 내서 음성적인 판촉활동을 펼치거나 소문을 듣고 고객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품 현지조달, 불법수리·서비스까지 ‘대담’ 
불법 유통을 자행하는 이들은 최근 더욱 대담해져,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거나 서비스 기사까지 상주시켜 수리 및 서비스를 해주며 농가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수입 중고 농기계 불법 유통의 혐의가 짙은 한 업체를 일반인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한쪽에 수리를 하는 창고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업체 관계자는 말을 아끼면서도 수입 중고 농기계들은 다른 창고에서 관리해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 농기계 판매 시 수리를 한 후 판매하고 있고, 개별적인 서비스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지만 암암리에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으로 판매되는 수입 중고 농기계 가격은 기존 중고 가격 이하여서 전후사정을 모르는 농업인들이 현혹될 수 있다. 주변에서 지켜본 결과 상담 방문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농민들의 발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법 지키는 대리점 골탕
불법 수입 중고 농기계로 인한 피해는 국내 업체 대리점과 일본 업체 대리점 모두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리점 관계자는 “이곳에서 구입하지 않은 농기계를 가지고 와 수리를 해달라는 농민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만약에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본사나 정부에 민원을 넣으며 협박하는 경우까지 있어 곤란할 지경”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들 불법 업체들 때문에 대형 기종 트랙터와 콤바인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라며 “이대로 판매가 계속 감소된다면 대리점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크게 우려했다.

 

“제대로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단속과 감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과 처벌 규정이 미미해 이들이 더욱 과감하게 불법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이 신고센터 운영 등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합동점검과 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고 직수입 업자들을 고발하거나 신고 조치를 해도 조사가 바로바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대로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한 일본계 대리점 관계자는 “합동점검을 하거나 단속을 할 때 인원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인원 동원이 충분치 않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단속을 요청하는 피해 대리점이나 업체들이 수입 농기계를 취급하는 곳이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처벌 규정 강화해 유통시장 교란 막아야
이러한 불법 수입 중고 농기계 유통에 농기계 업계 전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업체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농가 인식 개선 및 처벌 규정 강화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경로로 수입 후 판매된 농기계가 아닐 경우 부품 및 서비스 제공의 원천 차단을 검토 중이고, 대리점에 안내문서나 안내판 제작 공급도 검토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불법 중고 농기계 수입과 유통이 계속해서 횡행하는 것은 적발돼도 업체에 부과되는 과징금이 이익보다 낮아 업체에서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면서 “지금보다 처벌 규정을 강화해 농기계 유통시장 교란과 혼탁 등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중고 농기계 직수입 업자에 대한 조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기관 간 협력 강화와 인력충원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암암리에 암세포처럼 퍼지고 있는 불법 수입 중고 농기계 판매가 더 이상 농기계 시장을 교란시키지 못하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이은용 객원기자 | dragon@new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