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지리학자를 만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젊은 제자에게 일본의 노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훌륭한 학자가 되길 기대하겠네. 그러려면 전공을 10년에 한 번씩 바꿔야 한다네.”
그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답했지만,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우물을 깊이 파며 한눈팔지 않는 게 학자의 길인데 10년에 한 번씩 전공을 바꾸라니… 건성으로 흘려들은 그 말을 30여 년이 지난 요즘, 절절이 새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런 시대를 맞이한 까닭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집요하기로 유명하다.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저력, 그 바탕에 집요한 연구정신이 있다. ‘고지마 원숭이 관찰기’가 대표적 사례다.
1950년대 일이다.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 연구진이 고지마의 한 무인도에서 원숭이들의 삶을 장기간 관찰했다. 고지마 원숭이들의 주식량은 고구마였다. 어느 날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들고 해변으로 나가 바닷물에 씻어 먹었다. 고구마는 다 똑같은데 굳이 바다까지 나가 짠물에 씻어 먹다니… 원숭이들은 이 특이한 원숭이 한 마리를 왕따 취급을 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한 원숭이들이 한두 마리씩 늘어났고 3~4년 지나자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게 되었다.
일본 연구진들은 집요하게 그들의 행동을, 식생활의 변화를 관찰했다.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새로운 식사법을 따랐지만, 10%의 원숭이들은 끝끝내 옛날식 (그냥 흙을 털어내고 먹는) 식사법을 고집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고집스럽고 소신있는 10%의 원숭이들은 나이든 원숭이들, 지배층 원숭이들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교토대 연구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0년, 20년 계속 관찰하며 놀라운 사실을 또 하나 발견했다. 세계 각지의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고지마 원숭이들은 그 섬에서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않았고, 바닷물에 씻어 먹으면 더 맛있다는 사실을 세계의 다른 원숭이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교토대 연구진들이 발견한 이 사실을 세계의 과학계가 주목하며 관련 연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 등장했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량에 이르면 그 행동이 특정 집단(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공간을 넘어 확산된다.’
그 개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다 적용된다는 사실도 원숭이를 통해 알아냈다. 1950년 무렵에 태어난 고지마 섬의 원숭이 한 마리가 수만 년 동안 내려온 식사법을 바꿔놓은 것이고, 인간들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물론 그 원숭이는 자신이 무엇을 이뤄냈는지 알지 못한 채, 그 의미에 대한 가치도 전혀 부여하지 않은 채, 그저 맛있게 고구마를 먹다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고지마 섬에 살던 혁신가 원숭이를 추억하며, 1980년대에 활동했던 지리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 우물을 집중적으로 파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에, 10년마다 새 우물을 파라고 권했던 지식인. 그는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1.5차 산업을 권했던 사람이다.
“옥수수를 그냥 팔지 말라. 쪄서 팔거나, 구워서 팔거나, 작은 변화 한 가지를 주면 가치가 달라진다.” 무슨무슨 이론들보다 얼마나 쉽고 명쾌한가.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