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어렵다, 어렵다는 말을 듣는 것도 어렵다.
그러다 농촌을 갔고 거기서 한 장년 기업인을 만났다. 한때 주먹 좀 썼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첫인상이 너무 맑았다. 정직하고 부드럽고 모범생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유머 감각은 전혀 없고 말투는 투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야말로 한 주먹 했나 보다) 그는 줄곧 진지했다. 모범적인 사업 얘기와 농촌의 변화가 주된 내용이라 조금씩 지루해지던 차에 툭,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듯 한마디가 나왔다.
“기업은 견디기만 하면 됩니다.”
“네? 뭐라구요?”
되물었더니 또 답했다.
“견딜 수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게 기업이라구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긍했더니, 친절하게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어떤 기업도 쉽게 호재가 나타나진 않습니다. 갑자기 횡재하는 기업 치고 장수하는 경우도 없구요. 어렵더라도 견딜 수만 있다면, 언제고 크게 점프할 기회가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기업을 할 수 없지요.”
잠시 상념에 빠진 상대를 배려하듯 숨을 고르고는 친절하게 덧붙이기를, “계속 견뎌갈 수 있는 여력 자체가 사실은 굉장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여건 속에서도 계속 투자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배짱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하겠느냐고,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갈겼다.
걸출하고 솔직담백한 그와 1박 2일 동행하며 여러 명을 만났다. 그들 역시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듯 어려움 같은 단어는 도무지 등장하지 못했다. 서울의 기업인들과는 영 색깔이 달라 기분이 오묘해졌다. 어렵다, 어렵다, 큰일이다를 되뇌고 사는 기업인들에게 그들을 소개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즉각 행동한다.”
한 농장의 작업 원칙이다. 이 원칙 속에서 세 가지 장면을 읽었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의지, 낯선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자세,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행동들. 농장만 그런가. 사람, 기업, 수많은 공동체들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이자 철학 아닌가. 기본기가 없으면 쉽게 흔들리고, 원칙에 얽매이면 고루해지기 쉽고, 확신이 없으면 즉각 행동하지 못한다. 세 가지를 고루 갖춘 사람이나 기업은 어떻게든 성공하게 되리라.
하지만 이 농장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개가 짖으면 왜 짖는지 알고, 연기가 나면 연기의 빛깔만 보고도 무엇을 태우는지 알고, 바람이 불면 그 세기와 온도를 느끼며 작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는 것, 그게 우리 기준의 성공입니다.”
이쯤 되면 농민이 아니라 도인이다. 그래서 가끔 시골을 가야 한다. 깊은 산 높은 골에는 늘 평범으로 위장한 도인 몇 분 살고 있으니까.
유 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물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