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날이 많지 않은 노인과 갓 태어난 아기 중에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을까? 두 사람의 논쟁을 들어 봤다.
A는 노인의 삶에 가중치를 부여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의 하루하루는 다른 이들의 하루하루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소중히 여기는 간절함을 가치로 환산해 보면 얼마나 대단할까요? 게다가 오랫동안 살아온 이력도 엄청난 가치입니다. 체력이 쇠퇴한 만큼 지혜와 경륜이 충만해졌으니 그것을 활용하면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가늠하기 힘들지요.”
B는 아기의 삶에 가중치를 더 부여했다.
“앞으로 살날이 엄청나게 많이 남은 아기의 가치가 월등히 높습니다. 아기가 후퇴해 자궁 속으로 되돌아간다면 모를까, 점점 성장해 가는 그만큼 가치도 커지는 것 아닙니까? 아기는 외형적으로도 성장하고 내면적으로도 성장하게 될 테니 일단 부모들부터 아낌없이 투자하잖아요? 가치 투자자들한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디를 택하겠습니까? 아기에게 투자하는 게 낫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거예요.”
이번에는 그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 A가 B의 논리를 반박했다.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지요. 아기들에게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생존의 날이 저마다 불명확하고 성장세도 알 수 없지요. 우량주가 될지 불량주가 될지도 알 수 없지요.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반면 노인은 이미 검증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굉장한 가치 아녜요?”
B의 반박 논리다.
“가치란 기본적으로 수익성을 의미합니다. 수익은 생산능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어느 쪽이 가치가 클까요? 리스크는 모든 투자의 감내 요소입니다. 안전성은 가치의 일부분일 뿐이고 잠재적 가치야말로 투자의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잠재적 가치나 생산성 측면에서 볼 때 노인은 잉여 가치 수준입니다.”
다시 A의 반박한다.
“잉여 가치라고요? 노인이 갖고 있는 인생 노하우를 생각해 보세요. 노인의 경험과 경륜은 현장에서 검증된 것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지혜는 잉여가 아니라 무한가치입니다.”
B도 지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같은 유형으로 살던 농경시대에는 노인의 경험이 경륜과 지혜로 유용했지만 요즘처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의 경험이 유용할까요? 오히려 미래의 성장 동력이 유용하지 않을까요?”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치가 아니라 고통 논쟁으로 이어졌다. 노인의 죽음과 아기의 죽음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A가 말했다.
“노인의 죽음이 훨씬 고통스럽죠.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모르잖아요? 죽음의 고통은 살아온 세월과 비례하는 겁니다.”
B의 반박이다.
“싹이 미리 잘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이 큽니다. 이미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고 난 뒤의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순리로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 모두 아기이면서 노인이다. 농업은 그것들의 순환인지도 모른다.
◇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