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아침 회의 때 일이다. 대표가 간부들에게 물었다.
“뱀이, 비얌이… 참 많이 늘어났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모두들 눈만 껌벅껌벅했다. 대답을 바라는 질문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비얌이 실제로 많이 늘어났는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다. 뱀의 수를 측정하는 통계기관이 있던가? 그곳은 산림청인가? 통계청인가? 하고 여러 기관을 떠올리는 이, 뱀이 늘어난 이유를 재빨리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분주하게 굴리는 이, 아침부터 비얌을 떠올리며 웅크려 앉은 자신의 모습이 똬리 틀고 앉은 뱀처럼 느껴져 몸서리를 치는 이, 그렇게 제각각 껌벅껌벅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대표가 다시 물었다.
“지하철에 그렇게 많던 행상들이 싸그리 사라졌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역시 아무도 답을 하지 않고 눈만 껌벅껌벅했다. 개중에는 지하철 행상들이 줄어든 만큼 뱀의 숫자가 늘었나? 하고, 늘 하던 대로 수치를 맞추려는 이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지하철 행상이 줄어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 아닌가. 지하철에서 신문 판매가 사라진 것도 같은 배경 아닌가. 도대체 물건은 어디에서 팔리고 있는 거지? 음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그려지자 대표의 의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이유를 묻는 것 아닌가?
뱀은 왜 늘어났을까? 땅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땅꾼은 왜 사라졌는가?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장사는 왜 안 될까? 뱀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뱀의 수요는 왜 줄었는가? 뱀탕(생사탕이라고도 했다)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뱀탕집은 왜 사라졌는가? 정력-보양-건강기능을 위한 상품들이 수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보호와 동물보호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 가고, 산림은 점점 울창해지고 있으니 뱀들로서도 살맛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런 추론을 이어가다 보니 과연 뱀의 증가 추이가 확실해 보였다.
지하철의 행상들은 어디로 갔을까? 장사가 잘 되는 곳으로 갔겠지.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들을 모아 놓기만 하면 어떻게든 팔아내는 달인들이 있었다. ‘비얌이 왔어요’도 그런 상술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지하철에 사람이 모여 있어도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물건을 팔 수가 없다. 군중 앞에서 ‘비얌이 왔어요’를 소리 높이 외쳐도 반응이 없다. 핸드폰 속 비얌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상인들은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쇼핑몰의 증가 속도는 뱀들의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한 모바일 쇼핑몰이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이 얼마나 되느냐, 그 땅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로 가름하던 부의 기준은 이제 과거의 잣대가 되었다. 이제 기회의 땅은 모바일 속에 있다. 이 땅은 무한하고, 누가 어떤 깃발을 꽂느냐에 따라 영역이 보장되는 기회의 땅이다.”
서부개척 시대에 깃발 꽂기로 땅을 소유하던 환상의 역사가 떠올랐다. 달콤한 말이 마치 뱀의 유혹 같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뀐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무엇을 팔지? 팔 상품은 어디에서 구하지? 상품이 넘쳐나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인데… 그리하여 그 기업의 아침 회의는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자는 식으로 끝났다. ‘당분간 하던 대로 하자’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용두사미라는 말이 다시 태어났다. 역시나, 어디에서고 뱀은 좋겠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들이 그런 회의를 반복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니 또 뱀은 좋겠다.
◇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