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엘 다녀왔다. 어촌도 다녀왔다.
농촌과 어촌 사이 도시에서도 하룻밤 잤다.
그 과정에서 한 화훼농부를 만났다. 부부가 함께 귀농한 지 10년째, “겨우 먹고 살 만한 수준을 만들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았다고는 말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서울 친구들을 만나 보면 비교가 돼요. 우리가 선택을 참 잘했다는 걸… .”
이유는, 마음의 여유란다. 시간적으로 도시인들보다는 여유가 있어 동호회라든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부자다.
바닷가에서 중장년들과 맥주를 마셨다. 그 중에서 두엇이 신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나도 따라했다. 오랜만에 바닷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연신 다리를 긁었다. 바다모기, 대단했다. 누군가 한마디 툭 던졌다.
“포항모기는 군화도 뚫는대요.”
엄청난 구라다. 구라는 뭔가 들뜨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유쾌한 상상을 끄집어내는 힘이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한 명의 구라발이 구멍마개 이론을 펼쳤다.
사람들은 대개 문제가 생겼을 때 구멍 속에 집어넣고 마개를 닫아놓고 앞으로 간다. 당장 할 일은 많고 그 문제를 풀 겨를이 없기 때문에 일단 구멍에 넣어놓는 것이다. 나중에 마개를 열고 해결해야지, 하고 눈앞에 닥친 일을 하기 위해 앞으로 가는데… 가다 보면 군데군데 계속 그런 일이 생긴다. 구멍 속에 집어넣는 미해결 문제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한참 걸어가서 인생의 끝까지 가면 그 구멍 속의 문제들을 까마득히 잊기 십상이다. 구멍 속에 넣고 마개로 막아 놓은 게 몇 개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그래서 이따금씩 자기가 막아놓은 구멍들을 열어 어떤 문제들을 그 속에 넣어두었는지 살펴봐야 해. 그걸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야. 그걸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괴물로 변해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지.”
평생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배 농사를 지었다니 배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 대까지 배 과수원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었다. 강남이 개발되기 직전에 그 땅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와 계속 배나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 땅을 계속 갖고 계셨으면 재벌이 됐을 텐데요. 아깝지 않습니까?”
그가 답했다.
“그걸 아까워했다면 화병이 나 진즉에 죽었겠지. 그렇잖아도 거기 살던 옛 친구들을 간혹 만나요. 그러곤 생각하죠. 내가 얘들처럼 됐으면 어떡할 뻔했나. 천만다행하게도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고 여전히 배 농사를 짓고 있단 말이지.”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무지막지하게 돈을 많이 번 것은 확실하다.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각자 상상에 맡기자. 우리 모두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가끔씩 구멍을 살펴야 한다.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